백수의 하루는 생각보다 더 단조롭다. 해야만 하는 일, 예를 들면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몰랐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시작이라도 해 보자니 끈기가 부족해서 쉽게 그만두곤 했다. 하고 있던 것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놓게 되면서, 나는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한, 두 달은 자유로운 기분이었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딱 그만큼의 두려움과 위기감이 몰려왔다. 거기에 부모님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더해지니 어깨가 한참 더 처졌다. 그러다 문득, 다들 바쁘게 일하러 간 순간에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생기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곤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라는 존재 이유가 불명확해진다는 데 있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 이 세상에서 나는 별로 의미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 나 자신이 먼지와 다를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그 하찮은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그 마음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2시쯤 되니, 그 시간엔 잘 울리지 않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입니다. 류재희 님 맞으시죠? 작년 12월에 신청해주신 녹음 봉사를 이제 시작하실 수 있게 되어 연락드렸습니다. 교육받으러 오세요!" 녹음 봉사? 사실 전화를 받은 당시엔 그런 걸 신청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화를 받던 날은 신청한 날보다 반년이나 지난 여름날이었다. 알고 보니 녹음 봉사는 신청자가 많은데, 결원이 생길 시에만 충원하는지라 늦게 연락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교육을 받으러 갔던 날도, 평일 저녁 시간이었는데 어린 학생들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연령대까지 5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복지관의 지하 강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따뜻한 마음이 모이는 곳, 잊고 있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실 봉사를 신청할 때만 해도 목소리로 봉사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녹음 도서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러한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녹음을 하다 보면, 평소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본 적이 잘 없던 탓에 혀가 계속 꼬이고,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책 내용을 다 외울 지경이 된다. 한 번 갈 때 평균 약 2시간 정도 녹음을 하는데,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도 시간이 갈수록 목이 칼칼해지고, 목소리엔 힘이 떨어진다. 온몸에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때면 ''을 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인지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2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도 녹음되는 분량은 약 20페이지 남짓이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다 녹음하는 데,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사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대장정인 데다, 집에서 복지관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자주 다니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아직 첫 번째 도서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 평이 채 안 되는 녹음실은 아주 작고, 방음을 해야 하다 보니 폐쇄적이기까지 하다. 그 작은 곳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홀로 마이크에 대고 녹음을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그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사막 같던 내 일상을 적시는 작은 오아시스가 되었다. 백수 생활을 하며, 게을러질 대로 게을러진 내가 이른 아침부터 집 밖으로 나오는 날은 녹음실에 가는 날 뿐이다. 나의 목소리가 보지 못하는 분들의 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기적과도 같다. 그리고 그 기적은 나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내 존재 이유에 대한 불안함을 떨칠 수 있게 해주었고,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해 주었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나는 단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기적을 만들러 갈 것이다. 혹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꼭 권하고 싶다. 함께 기적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장조적 사고와 글쓰기 수업 때 작성했던 글 남겨두기 포스팅



  

21살, 생애 첫 혼자 여행 : 내일로②

Posted by unnjena 여행 : 2018. 2. 22. 18:54

2015.03.01~2015.03.07

21살, 생애 첫 혼자 여행 : 내일로②

(순천-여수-대전)


내일로 여행의 후반부를 생각하면, 아니 이제까지의 여행지를 통틀어 베스트로 꼽히는 곳이 바로 순천이다. 

가보기 전엔 들어본 적도 없던 곳이었는데, 그저 광활한 자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당시 머물렀던 전주와 다음 목적지로 생각했던 여수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가 본 곳이 순천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별 생각 없이 방문했던 곳이었지만, 내일로 여행 이후 처음이자, 유일하게 다시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순천하면 순천만 습지와 정원이 유명하다. 습지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정원은 사람의 손이 닿아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둘 다 너무 좋았다. 특히 순천만 습지는 이제껏 본 적 없던 광활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순천에 도착하자 마자 해가 지기 시작하는 때 였는데, 게스트하우스 호스트님이 순천만 습지를 다녀오라고 추천해주셨다. 함께 숙소를 쓰는, 혼자 오신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급하게 조인해서 택시타고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습지 앞에 꼬막정식도 추천 받았는데 2인 이상 가능했던지라 같이 간 보람이 있었다. 습지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뭘 볼 수 있을지 감이 안왔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예뻤다. 일몰을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가려면 약간 등산을 해야 하는데, 그 때만 해도 사무실에서 일만했던 저질체력 때문에 그것마저 힘들었다. 그래도 동행이 있던 덕에 꿋꿋이 올라가서 일몰도 보고 무인 판매대에서 엽서를 사서 우체통에 넣어보기도 했다. 다시봐도 그 때의 긴장과 설렘이 생각 나서 묘하게 기분이 좋다.


"혼자 떠난 내일로 여행 4일차! 아무 계획 없이 시작했던 것 치고 무리 없이 이제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다!!ㅎ 외로움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즐기기도, 고생하기도 한 여행이었다!!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걸 귀히 여기고 나 자신을 좀 더 가꾸는 앞으로가 되길!"

P.S. 어디로든, 떠나는 걸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순천만 습지 일몰전망대에서-


   


      


여수는 사실 기억에 남는 것이 크게 없다. 가장 많은 동행과 함께 했었는데, 모두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분들이었다. 여수 최고 맛집이라고 추천 받은 곳을 찾아가느라 30분 동안 걸었었다. '개도집'이라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여수 별미 '서대회'를 먹었었는데, 편식쟁이라 회는 먹어도 회무침은 잘 먹지 않는 내가 감탄하며 먹은 곳이었다. 아, 순천에서 만났던 게스트하우스 게스트들을 3명이나 여수의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었다. 모두 따로, 혼자 오신 분들이었는데, 그래서 더 반가웠다. 오랜만에 케이블카도 타보고, 야경도 봤었다. 바람이 참 많이 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 그냥 올라오려다가 대전에 들렀다. 들렀다고 하기도 민망하리만큼, 2시간정도만 있다 왔는데, 그동안 대전 유명 빵집인 '성심당'에 다녀온게 다다. 그래서 사진이 빵사진 밖에 없다..ㅎ 서울 어느 빵집보다 종류도 많고 손님은 더 많았다. 대전까지 왔는데 왠지 많이 사야 이득인 것 같아서, 안그대로 짐이 많았는데 빵까지 잔뜩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생애 첫 혼자 여행이 끝났다. 여행 기간 동안 하루에 2만 걸음 이상 걸었던 탓에 발에는 물집 투성이였고, 배낭을 멘 어깨도 엄청 뭉쳐버렸었다. 근데 그래도 좋았다. 여행이 끝나고, 당시 페이스북에 남겼던 여행 소감을 끝으로 늦은 여행기를 마친다. 지금의 나에게, 또 앞으로의 당신께 혼자 여행에 대한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라며.



그냥 아무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하늘 보면서 멍때리기도 하고, 원없이 자고, 좋은것만 보고..

되게 별거 아닌데 평소에 못해본 것들을 많이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목적지를 정하고, 일정을 계획하고. 

내가 결정하는대로 나의 하루가 바뀌는걸 처음 경험해보는..느낌이었다고 해야하나.

내 시간을 오로지 내가 결정하는 기분이었다 !!


혼자만의 여행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서 더더 좋았고.

책도보고 엽서도 쓰고 많은 생각을 하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그럴시간도 없이 웃고 떠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더더 재밌었다!


지금까지는 공기좋은데 가서 사진찍고 맛있는거 먹는게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보다 훨씬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걸, 지금, 21살이 돼서야 안거같다. 사실 혼자서 떠나기 두려웠지만 과감하게 떠났던게 진짜 잘한 일 같다 :)


뜬금없는 기간에 휴가를 잡아서, 같이갈 친구도 없다고 우울해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때 떠나길 잘한듯 ^0^

혹시라도 혼자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가서 직접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 :)


-2015.03.07 첫 혼자 여행을 마치고-


  

21살, 생애 첫 혼자 여행 : 내일로①

Posted by unnjena 여행 : 2018. 2. 21. 18:48


2015.03.01~2015.03.07

21살, 생애 첫 혼자 여행 : 내일로①

(정동진-단양-전주)


나는 스무살이 되던 해를 대부분 회사에서 보냈었다. 

스무살과 어울리는 단어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술도, 연애도, 쉼도 없는 한해였다. 

회사 외에 기억에 남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 일상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한 여행은 삶의 낙이 됐다.


사실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21살의 나는, 휴가가 시작되기 전 날까지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당시 자유 기차 여행 '내일로'를 알게 돼서, 휴가가 시작되기 전 날 늦은 밤까지 검색하며 고민만하다가, 이대로는 또 그냥 휴가를 흘려보내겠다 싶어서 밤늦게 짐을 싸서 정동진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탔었다. 

막차를 놓칠까봐 택시를 타고 아저씨께 빌다시피 부탁드렸는데, 다행히 역을 잘 알고계신 분이라 열차 시간을 조금 남기고 도착할 수 있었다. 내 몸만한 배낭을 메고 승무원 분과 함께 열차로 뛰어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5년 3월 1일, 정동진으로 가는 막차에서 내 생애 첫 혼자여행이 시작됐다. 


      


실은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도착했지만, 날이 흐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곳의 모든것들이 좋았다.

오랜만에 본 바다라 더 예뻐보였고, 남겨둔 사진을 보니 그냥 백사장만 봐도 좋았나보다.



     


둘째날에는 단양에 갔다. 처음으로 숙소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처음 동행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 기대했던 패러글라이딩도 해봤다.

무서울 것 같았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고 롯데월드 모노레일이 생각날 정도였다. 태워주시는 직원분들도 친절하셨고. 이 경험은 훗날 체코에서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셋째날은 전주로 갔다. 음식이 맛있다고 말로만들어서 항상 가보고싶었는데 처음 가본 곳이었다. 사실 내일로로 갔던 모든 여행지(정동진-단양-전주-순천-여수-대전)가 처음 간 곳이었다. 하지만 혼자 먹을 수 있는게 많지 않았고(혼자 먹어도 되는데 혼밥이 마냥 뻘쭘했던 혼자여행 초급자 시절), 날씨가 내내 흐렸고, 우산이 없었는데 비가와서 별로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진 못했다. 그래서 더 다시 가보고 싶은 전주.



-②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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